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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곽력자 2020. 12. 1. 15:34

 

송진


송민호는 메이드 복이 퍽이나 잘 어울리는 23살의 한국인이었다. 좀 산짐승, 그러니깐 곰 같기는 해도 그게 일종의 갭모에로 부녀자님들께 아주 잘 먹혔어서, 송민호는 그 덕에 도쿄 시내의 메이드카페에서 10월 달 부터 현재 까지 삼 개월이나 근무하고 있었다. 낮은 목소리로 오카에리나사이 고슈진사마를 외우다 미쳐가며 안 그래도 소돔과 고모라인 머릿속이 일본어에 푹 절여졌지만, 그는 어머니가 유학 보내주신 도쿄에서 바보같이 셰어하우스 사기를 당했기 때문에, 의존하고 손 벌릴 수도 없던 그는 아르바이트든 뭐든 페이가 쎈 일자리를 찾아야 했으니... 송민호는 금방 현실에 수긍했다.

 

그러던 어느 날에 메이드카페에 제 발로 찾아온 보기 드문 20대 남자, 꽤나 시니컬하게 죽어가는 표정의 분홍색 머리 남성... 그것도 엄청 핫핑크인 저 눈 아픈 헤어컬러가 아키하바라 오타쿠의 평균인가 싶었지만 얼굴은 전혀 아니었다. 아키하바라의 오타쿠들과는 비교도 안 될 천상계 쯤. 이곳의 오타쿠들이나 아저씨들과는 종 자체가 달랐기 때문일까, 송민호는 넋 놓고 그를 바라보기만하다. 그가 카운터에 가까이 와서야 온 것을 깨달은 마냥 인사를 했다. 

송민호가 친절하게 어서오세요하는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그는 다짜고짜 마츠바라씨를 찾으러왔다고 했다. 마츠바라, 마츠바라 레이, 흰 피부에 흑색 숏 단발, 분홍색 mcm백팩을 메고 다니던 정석의 지뢰계 여성, 근무 중 텀블러에 하이볼을 넣어 와서는 홀짝홀짝 몰래 마셔서 가끔 말할 때 식도에서 부터 알콜내가 나던 여성, 마츠바라양은 삼일 전 부터 출근 안했다고 하니 그는 몹시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리고선 안 들릴 거라 생각했던 건지, 짜증에 무의식적으로 나온 건지는 몰라도 남성은 나지막히 씨발하고 중얼거렸다.

 

송민호는 그게 욕이었지만 서도, 또 내심 반가웠다. 핑크머리에게는 꽤 진지하게 야마 도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송민호는 삼 개월 동안 여기가 풍속점인 줄 알고 오는 머리까진 중년남성, 자신과 후지와라군을 야오이로 엮어먹는 단골 부녀자들, 안경 여드름 돼지 속성의 남성 오타쿠등 별의 별종들을 다 봤음에도 제 또래의,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한국인 남성은 처음 봤으니깐, 반가움에, 어쩌면 정상적인 친구도 될 수 있지 않을까? 수준의 단순하게 돌아가는 정신사고로 인하여 송민호는 과도한 김칫국을 마시며 핑크머리 남성에게 물었다.


... 한국분이세요?

네?


얼탱이 없다는 남성의 표정 이건 또 무슨 오지랖이냐 쯤의 표정이었지만 핑크머리 남성은 본 심성이 착한건지 곧, 제대로 답해주었고 송민호의 물음이 그의 말문이라도 터준 것이었는지 물어보지 않은 것 마저 술술 불었다.


네... 4년 살았는데... 같이 살던 마츠바라양이 저희 집 보증금을 다 빼가서...


송민호가 구구절절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마츠바라 그거 완전 상습범이네 싶으면서도 분홍머리 남성이 충분히 지뢰녀한테 돈도, 마음도 뜯기고 살 게 생겼긴 했다하고 생각 할 쯤에 그의 말이 웅얼웅얼 어눌해지더니 계속 말하며 떠올려보니 서럽기는 한 건지 갑자기 울었었다.

 

그는 카운터 앞에 서있던 그 상태 그대로, 아래 쪽 속눈썹에 송글송글 맺힌 눈물방울만 아래로 똑똑 흐르도록 예쁘게 울어서 송민호는 다시 거기에 넋을 놓을 뻔 하다, 뇌 어디에 진짜 메이드 정신이라도 박힌 것 마냥 이 핑크머리 한국인을 계속 카운터 앞에서 질질 짜게 놔둘 수 없단 생각에 정신을 되찾고 그를 매장 구석쯤의 빨간 깅엄체크 테이블보가 깔린 빈 목조 테이블에 앉혀놓고 아마 제 월급에서 까일 귀여운 머그에 든 코코아를 내주었다. 성인남성을 미아쯤의 시선으로 보는 괴상한 대처였긴 했으나, 그게 메이드카페의 일개 아르바이트생 송민호의 최선은 맞았다.


그로부터 정확히 두 시간 쯤 뒤에 카운터 송민호의 퇴근시간이 되었고, 남성은 어느 새에 나간건지 그 테이블에 없었기에 송민호는 내심 아쉬워했지만, 그 잠깐의 아쉬움이 의미 없게도 민호는 그를 가게 문 앞 에서 다시 만났다. 조금 술에 절여진 것 같은 상태의 그를, 그는 날로 먹고는 못사는 성격인건지, 그저 주정인건지, 도어벨을 딸랑 거리며 가게 문을 열고나온 송민호의 손을 잡아 알콜내나는 천엔짜리 지폐를 꼭 쥐어주었고 송민호는 이거 갚겠다고 여기서 기다렸을 핑크머리 남성이 내심 귀엽게 느껴져서 물었다.


저 기다린 거 에요?

... 미노씨,


메이드복에 달려있던 자신의 명찰에 <ミノ>하고 적혀있던 글자를 기억 했던 건지, 핑크머리 남성이 웅얼거리며 대답 않고 자신의 이름을 불러서, 송민호는 저 뒤로 이어질 말들을 기다렸으나 그는 말을 이어 줄 생각이 없는 건지 잠시 멍하니 있다가 다시 한 번 송민호의 손을 잡아왔고, 그것이 지금의 송민호가 이름도 모르는 남의 집 거실에 좌불안석으로 앉아있는 근본적인 이유가 되었다.

 


그의 집, 레이양이 보증금을 싹 다 빼갔다는 방 두개 욕실 하나 짜리 집은, 송민호가 둘이 동거한다 들었던 말이 잘 못 들었던 건가 헷갈릴 정도로 식탁 위에 올려져있던 아마 레이양의 것일 진주가 올려 진 검은색 네일팁을 제외 하고는 성인 남성과 여성 하나가 살았다는 티가 전혀 나지 않았다. 와중에 남성은 줄 게 있다고 하며 방으로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고, 그동안 기다릴 기력도 없던 송민호는 거실을 쭉 둘러보았고, 거실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꽤나 큰 사이즈의 열려있는 박스에 시선이 꽂혀, 위에서 아래를 보는 시선으로 박스 속을 들여다보았다. 송민호는 그 속에서 아이스 팩 뭉텅이와 나프탈렌 세 개, 그리고 아이스 팩으로 가려져있는 무언가에서 부터 자랐을 진득한 액체로 엉킨 것 같은 머리카락을 봤었다.


숏 단발로 가볍게 쳤었던 머리가 너저분하게 점액질로 인해 조금 엉킨 채, 코랄 색 섀도우로도 가려지지 않는 파랗게 멍든 두 눈을 가지런히 감고 있는 마츠바라 레이, 그녀의 두상, 뭉텅이로 들었던 아이스 팩 덕인지 원래 죽은 사람은 조금 차가운 건지 송민호가 약지 손가락 끝으로 레이양의 볼을 콕 찔렀을 때, 송민호는 차가움과 소름을 동시에 느꼈고, 속으로 남자의 그 씨발이 쾌재였구나... 웅얼거리던 말 중에 진실은 없었구나... 를 느꼈다.

남성이 드디어 방에서 나왔을 때, 송민호는 아직도 박스속의 아이스 팩 보다 꽁꽁 얼어있는 채로 송장 된 마츠바라를 쳐다보고 있었다. 남자는 송민호가 지금 들여다보는 박스 속의 내용물이 이제서야 기억났는지 송민호를 노려다 봤고, 송민호는 그가 자신을 노려보는 것을 알고선, 남자가 자신도 레이처럼 죽일 것 이란 생각 만 들어차, 도무지 서 있을 수가 없어서 그냥 주저앉았다.

 

그러나 남자는 가만히 있는 송민호의 목을 조르거나, 부엌으로 달려가 식칼을 뽑아 온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송민호의 위에 올라 타 팔로 목을 감고, 단문을 속삭였다. 송민호가 자신을 향해 시선을 떼놓지 못하던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인지, 자신을 두 시간 동안 당신의 것으로 해준다면, 저걸, 눈감아 달라는 말을 일본어로 속삭였고, 송민호는... 그에 대하여 긍정의 대답만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https://youtu.be/6YpcdbS1sv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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