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5/07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도넛 홀 본문

pic

도넛 홀

곽력자 2020. 5. 2. 22:41

송진

 

 

 

아파트 화단 철쭉꽃 사이에서 술에 꼴아서는 까무룩 잠이 들어 제집마냥 편히 누워있는 그를 들쳐업고 친절히 집으로 데려갔다. 도어락 비밀번호 좀 알려달라니깐 죽어도 안 알려줄 건지 통 일어나지를 않아서 그냥 우리 집 침대에 엎어 놓았는데 툭 하고 치니깐 흰 면티에서 아파트 화단의 흙과 먼지들이 우수수 쏟아져 이불 위를 구르길래 기겁하고 다급히 그의 티셔츠를 벗겼다. 한 가슴팍까지 티셔츠를 당겨 올렸는데 그쯤에 애기 주먹만 한 관통된 구멍이 뚫려있었다. 나도 이 사람 술 냄새 맡고 취했구나... 하고 대수롭지않게 넘기고는 마저 벗기고 옆의 의자에 걸려있던 언제 꺼낸 지도 잘 기억이 안 나는 내 티셔츠나 입혀서 고이 눕혀놨다.

아침에 일어나서 평소의 루틴대로 주방에 물을 마시러 나갔을 때 시야에 제일 먼저 들어온것은 제 집마냥 자연스럽게 거실 소파에서 티비나 보고 있는 형이었다. 그의 옆에 앉아 우스갯소리로 어제 형 옷 벗기다가 본 관통된 구멍에 대해서 얘기했는데 형이 엥? 그거 잘못 본 거 아닌데라며 제 티셔츠를 가슴팍까지 말아 올렸다. 사실 그때까지는 형이 숙취 때문에 돌았거나, 장난을 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짜로 있었다. 애기주먹 만하고 그 부분을 구성하는 몸 조각만 뚝 떨어져 나간 것 마냥 깨끗하게 관통되어있는 홀이 상당히 당황스러웠고 내가 아직 잠을 자고있는건 아닐까? 싶어 손을 뻗어 그 부분을 꾹꾹 눌러봤더니 손가락에 피가 묻어났다. 그리고 정말 걱정되고 울상인 표정으로 오른손을 쫙 펼쳐서 그에게 보여줬다.

형은 피식 웃더니 그건 네가 만져서 그런 거라고 나에게 자신이 살아있음을 보여주려는 건지 몸을 움직여 댔다. 나는 그래도 정말 그가 못 미더워 한층 더 울상인 표정을 지었더니 웃기 다는 듯이 손뼉을 치다가 시계를 보고서는 재워줘서 고맙고 티셔츠는 빨아서 돌려 주겠다 하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날 하루종일 헛것이라도 본 것마냥 얼빠져서는 그 구멍에 대하여 생각했다. 살짝 만졌을 때 찰나의 그 느낌 이라던가, 어떻게 그런 게 존재하는가 같은 거, 온종일 그렇게 있다가 집에 돌아 가는 길에 그의 집 앞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 그가 직장에서 돌아올 때까지 집 대문 앞에서 주인 기다리는 백구마냥 죽치고 있었다. 그러다 7시쯤 되니 그는 멀끔한 양복 차림으로 퇴근했다.

너 왜 남의 집 문 앞에서 그러고 있냐?

티셔츠 받아 가려구요.

내가 말하고도 어이없어서 웃음이 새 나왔다. 나는 그가 착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는 흔쾌히 현관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형은 신발을 벗자마자 베란다로 가서 세탁기 속에 있는 내 티셔츠를 찿아주려는건지 안에 있던 옷들을 모조리 꺼내와서 거실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소파에 앉아 옷들을 하나둘 개기 시작했다. 나는 그 와중에도 '도와줘야겠다'라는 단순한 생각도 안 들어서 멀뚱하게 서있었는데  무의식적으로 내가 그의 가슴팍만 계속 뚫어지게 보고 있었는지 참다못한 그가 그게 그렇게 신기하냐면서 입고 있던 셔츠를 오늘 아침처럼 또 들췄다.  

나는 그 당시에 완벽히 제정신이 아니었기에 형... 또 만져봐도 돼요? 손도 빡빡 씻을게요.라는 말을 했다. 그는 어이없다는 표정이기는 했지만서도 거절을 하는 데에는 영 소질이 없는지 한숨을 쉬고서는 나지막이 그래 라고 대답했다. 

따뜻하고 끈적했지만 이게 사람이라는 느낌은 전혀 나지 않았다. 오히려 말랑하고 내장 그 자체에 가까워 거의 무생물체를 만질 때처럼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손가락이 닿고 스칠 때마다. 김진우의 몸과 숨이 떨리는 등의 아파하는 것도 느껴졌지만, 상황에서 오는 현실감이 없는지라 피가 손끝에서 팔을 타고 흘러서 걷어놓은 셔츠 팔 부분을 시뻘겋게 물들일 때 까지도 나는 남을 얼빠진 채 계속 만졌다. 변명을 한다면 형도 별말 없어서 그랬다.

나는 상황이 나빠지고 있는지 조차 몰랐다. 내 집중의 대상이 김진우가 아니라 홀이었기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내 왼쪽 어깨에 머리를 뉘인 김진우가 게거품 섞인 피를 계속 올려서 어깨 쪽의 천 부분이 젖어 들어갔다. 형은 몇 분간 미동조차 없었는데 갑자기 팔을 움직인다는 것이 느껴졌다. 달그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쇼파 옆 탁자 위에 있었을 유리 재떨이를 집었다. 그 후로는 제대로 기억은 나지 않았다. 형은 그걸로 내 머리를 후리고는 나가라며 계속 읊조렸다. 순간 아프다기보다는 멍했었고 나는 순식간에 현관까지 밀어져서는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는 보지 말자하는 형의 눈을 마지막으로 보고서 완전히 쫓겨났다. 당시 나는 피를 뒤집어쓰고 있었고 뒤통수도 얼얼했고 그 감촉도 잊지 못하여서 손만 쥐락펴락했다.

 




'pic'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골  (0) 2020.12.01
파레이돌리아上  (0) 2020.05.17
말티즈살인  (0) 2020.03.01
꽈리  (0) 2020.01.07
인류  (0) 2019.02.07
Comments